"나는 내가 죽도록 싫을 때가 있었다"
나는 왜 나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며 미워하게 되었을까
나는 한동안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겉으로는 웃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며 평범하게 살아갔지만, 속으로는 늘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나는 왜 제대로 해내는 게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자잘한 실수에도 ‘역시 난 안 돼’, 누군가가 나보다 앞서가는 걸 볼 때면 ‘나는 뒤처진 사람이구나’ 하는 감정이 자동처럼 올라왔다. 삶이 무너진 건 아니었지만, 내 안의 자존감은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때, 서점에서 무심코 펼쳐본 "나는 내가 죽도록 싫을 때가 있었다" 라는 책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저자인 김재식은 자신이 겪은 깊은 우울과 자기혐오의 시간을 가감 없이 풀어놓고, 그 속에서 어떻게 ‘나를 돌보는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것이다.
“나를 미워할 시간에, 나를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멈췄다. 내가 그동안 나에게 해온 말들 ‘왜 이렇게 무능하냐’, ‘또 실수했냐’, ‘창피한 줄 알아’ 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히 위로의 말만 건네는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향해 건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존중을 다시 배우는 교과서였다.
자존감이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느끼는 ‘자존감 낮음’의 원인을 차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단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자존감이란 ‘나 자신에 대한 태도’이며,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비난하며,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아주 작은 순간들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실수에도 나를 탓하고, 비교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봐 자꾸 회피하는 마음들. 나는 그 모든 감정들을 일기처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자존감 점검 일기를 쓴 날, 나는 나에 대해 생각보다 더 많은 실망과 분노를 안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오늘도 무기력하게 보냈어. 의지가 없는 사람 같아.’
‘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을까. 후회돼.’
‘나는 왜 늘 이렇게 부족하지?’
그 글들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관대하면서, 왜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도 잔인했는가. 친구가 그런 말을 나에게 했다면 나는 분명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자책하지 마”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목소리는 한 번도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말이, 결국 내 자존감을 만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에게 최대한 격려하고 이해하는 말들을 많이 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자존감 일기를 시작하다
그래서 나는 『나는 내가 죽도록 싫을 때가 있었다』를 덮고, 매일 자존감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나에게 비난이 아닌 위로와 지지를 건네는 글을 쓸 것.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오늘 잘했어’, ‘고생했어’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게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그 문장들이 조금씩 마음에 파고들었다. 하루를 돌아보며 작은 성취를 찾고, 나를 칭찬해 주는 연습은 마치 내 마음속 작은 아이를 토닥이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났지만, 결국 일어나서 출근한 내가 대견해"
"회사에서 실수했지만, 바로 사과하고 수정했으니 괜찮아."
"괜히 불안했지만, 그래도 참고 하루를 잘 견뎌낸 나에게 고마워."
그렇게 매일 한 줄, 두 줄이라도 나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는 일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자존감이 하루아침에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망가뜨리는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실수하거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역시 나는 안 돼’부터 떠올랐지만, 이제는 ‘이 정도면 잘했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 차이는 아주 작지만, 내 삶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변화였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을 때,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나를 외면했던 시간에서, 나를 수용하는 시간으로
『나는 내가 죽도록 싫을 때가 있었다』는 결국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존감은 특별한 성취나 조건 없이도, 나를 나로서 인정해주는 연습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 잘해야,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부족한 자신을 다그치고, 채찍질하며 동기부여를 삼았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나를 단 한 번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자존감은 ‘더 나아져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실수하고, 게으르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이전처럼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모습까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자존감 일기를 쓰며 깨달은 건, 우리는 매일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말이 ‘넌 왜 이것밖에 못 해?’가 아니라, ‘지금도 잘하고 있어’ 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습이다.
자존감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작고 따뜻한 말 한마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로부터 생긴다.
이제 나는 자존감 일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매일을 기록하는 그 루틴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나에게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거라고 격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