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저녁만 되면 배가 고플까' 읽고 바뀐 나의 저녁식사
저녁이 되면 폭식하는 나, 원인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저녁이 되면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하루 종일 괜찮았던 식단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부분 저녁 8시 이후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우선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빵, 라면, 남은 반찬, 요구르트 등등 식사를 한 지 한두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뭔가 더 먹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밤 11시, 배가 잔뜩 부른 채 후회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왜 나는 늘 저녁만 되면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이 질문이 바로 '왜 나는 저녁만 되면 배가 고플까'라는 책을 읽게 된 출발점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놀랐던 건, 저녁 폭식의 원인이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체내 호르몬의 변화, 특히 세로토닌과 렙틴, 코르티솔 같은 생화학적 요인이 우리 몸에 실제로 ‘배고픔’을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배고픔은 심리적 허기이자 생리적 신호이다. 감정의 소모가 배고픔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 저녁 폭식이 단순한 식탐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하루 동안 참은 감정을, 식사라는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
저녁을 바꾸려면 하루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녁의 식습관은 그날 하루 전체의 감정 흐름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구절이었다. 즉, 저녁 루틴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저녁 식단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전체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돌아보고, 감정의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나는 먼저 퇴근 후 나의 루틴을 적어보기로 했다. 평일 저녁 6시에 퇴근 → 지하철에서 폰으로 유튜브 보며 귀가 → 7시쯤 도착 → 저녁 식사 → 씻고 넷플릭스나 유튜브 시청 → 10시 이후 간식 혹은 라면 충동 → 12시 취침. 이 루틴에서 문제는 명확했다. 첫째, 운동이나 바깥 활동이 없고 에너지가 고여 있었다. 둘째, 감정 해소 루트가 식사밖에 없었다. 셋째, 몸의 피로는 풀지 않고, 도파민으로만 자극하는 콘텐츠 소비로 가득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바꾼 건 ‘저녁을 늦게 먹는 것’이었다. 기존엔 7시 이후에 먹었지만, 책에서 권한 대로 가급적 퇴근 직후 또는 6시 반 전에 식사를 끝내고, 이후에는 가벼운 산책이나 스트레칭을 먼저 한 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루틴을 시도해 보았다. 놀랍게도, 몸을 먼저 움직이고 나면 간식 생각이 훨씬 덜했다. 이 작은 변화가 감정의 먹는 패턴을 끊는 첫걸음이었다.
감정에 무너지지 않는 법
『왜 나는 저녁만 되면 배가 고플까』는 저녁 폭식을 ‘감정이 먹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개념을 중심에 두고 나만의 ‘감정-배고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지금 내가 배고픈가, 아니면 허전한가?"를 자문했고, 간식을 먹기 전 5분간 앉아서 오늘 있었던 일을 돌아봤다. 거기엔 늘 어떤 ‘감정의 구멍’이 있었다. 동료에게 들은 말이 신경 쓰였던 날,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한 날,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던 날,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일수록 나는 더 달고, 짜고, 묵직한 음식들을 찾았다.
그래서 그 공허함을 음식을 아닌 기록과 루틴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 정리 일기를 쓰고, 자기 전 명상 앱을 켜고 10분만 조용히 호흡했다. 음식이 주던 안정감을 감정 정리로 대체하는 건 처음엔 어색하고 허전했지만, 3주쯤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간식 섭취 빈도가 확연히 줄었고, 무엇보다 다음 날 아침이 가벼웠다. 그전엔 저녁 늦게 라면을 먹고 다음 날까지 속이 더부룩했지만, 루틴을 바꾼 후부터는 숙면의 질도 좋아졌고, 아침이 상쾌해졌다.
또 한 가지 바꾼 점은 저녁의 미디어 소비 습관이었다. 예전에는 식사 후 TV, 유튜브를 멍하니 보며 과자를 집어 들었는데, 이제는 미디어 대신 '가벼운 손일’을 하기로 했다. 조용히 독서, 집안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입보다 손이 바빠서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자체가 뇌를 휴식하게 했고, 마음이 점점 안정되어 갔다. 감정을 음식이 아닌, 루틴과 작은 행동으로 다루는 경험은 내 삶의 밀도를 바꾸는 기분이었다.
배고픔과 허기짐을 구별하는 삶
'왜 나는 저녁만 되면 배가 고플까'를 읽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허기’와 ‘감정 결핍’은 다르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예전에는 모든 배고픔을 배의 신호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책과 저녁 루틴 실험기를 거치며, 나는 ‘진짜 배고픔’은 위장에서 오고, ‘가짜 배고픔’은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위로, 정리, 회복, 인정, 휴식이었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다. 어떤 날은 여전히 늦은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꺼내기도 하고, 피곤한 날에는 감정을 잊기 위해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무의식적 소비가 아닌 ‘자각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오늘 나, 왜 배가 고픈가?"라고 물을 줄 알게 되었고, 그 질문만으로도 과식은 줄고 자기 존중은 늘어났다.
저녁은 하루의 끝이자, 하루 전체의 감정이 응축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녁이 되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배가 고픈가요, 아니면 마음이 허전한가요?”
그 질문 하나로, 내 인생의 루틴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나를 비난하며 냉장고 앞에서 밤을 허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녁 루틴을 바꾸는 건 결국 자기감정을 정중히 다루는 연습이자, 삶을 주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이 경험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