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독 어려울까?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나는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 특이한 감정을 자주 경험했다. 표면적으로는 친구도 많고, 관계도 원만하게 맺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상대가 나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다가오거나 의지하려 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감을 두고 싶어졌다. 친구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보다는 "괜히 나까지 감정적으로 끌려들어 가면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연인 관계에서도 상대가 내 속마음을 알고 싶어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선을 긋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내가 독립적이고 감정적으로 깔끔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되는 ‘관계의 거리감’은 내 삶에서 중요한 연결을 자꾸 놓치게 만들고 있었다. 겉으로는 쿨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이 사람이 나를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회피형 인간'이라는 책은, 내가 느끼던 불편한 감정과 행동의 원인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에서는 회피형 인간을 “상대의 친밀감을 두려워하며, 감정적 거리를 안전지대로 느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 문장은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본 듯 정확했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왜 이럴까’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감정을 숨기고 거리를 두는 행동의 진짜 의미
회피형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누군가와 나누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늘 조용하고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운 사람과 대화할수록 점점 말을 줄이고, 연락을 끊고, 감정을 감추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친구가 먼저 연락을 자주 하면 ‘귀찮다’고 느끼고, 연인이 내 감정을 들여다보려 할 때는 ‘이런 건 굳이 공유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 모든 행동의 이면에는 사실 ‘실망당할까 봐’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의 감정이 복잡하고, 때로는 불안정하다는 걸 상대가 알게 되면 나라는 사람 자체에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피형 인간'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회피형 인간은 타인과 친해지고 싶지만, 가까워지면 상처받을까 봐 관계를 조절한다. 그 조절이란 곧 감정의 차단이다.”
나는 그동안 감정을 차단하는 것을 ‘쿨함’, ‘자기 관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의 결과였다. 가까워질수록 과거의 상처가 떠오르고, 내 약한 모습을 들킬까 봐 본능적으로 방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방어는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타인과의 연결을 끊는 역할을 했다. 결국 관계의 거리감을 통해 내가 지키고자 했던 건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 내면의 불안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을 밀어냈고, 외로움을 감수하면서도 내 감정을 숨기는 쪽을 택해왔다. 관계가 무서운 건,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봐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드러낼 때 상대가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신과 불안 때문이었다.
감정의 문을 다시 열어보는 작은 연습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내 관계 패턴을 일기처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친구, 가족, 연인, 직장 동료 등 각각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반응했는지 돌아보는 작업은 생각보다 많은 통찰을 가져다주었다. 공통된 패턴은 단 하나였다. “상대가 기대하거나 의지하려 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도망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책에서 제안한 첫 번째 연습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감정을 분석하고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는 서툴렀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말부터 시작했다. 친구에게 “그 말, 사실 조금 불편했어”, “요즘 나 좀 지쳤어” 같은 짧고 단순한 표현을 연습했다.
처음에는 상대의 반응이 두려웠다. “이런 말 하면 멀어지지 않을까?”,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불안이 들었지만, 막상 말을 꺼내보니 돌아오는 반응은 전혀 예상과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 줄 몰랐는데 말해줘서 더 가까워진 것 같아”라고 반응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관계가 깨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또 하나 시도한 것은 ‘선제적으로 연락하기’ 연습이었다. 회피형 인간은 보통 누군가가 다가올 때 반응만 할 뿐, 자신이 먼저 연락하거나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꽤나 두려워했는데, 그건 단순히 상대가 귀찮아할까 봐서가 아니라,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사람씩, 먼저 안부를 묻는 연습을 시작했다. “잘 지내?”, “문득 생각나서 연락했어” 같은 간단한 말 한마디를 먼저 보내보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감정과 연결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로도, 나는 천천히 관계의 문을 여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회피하는 나를 이해하고, 연결을 선택하는 용기
회피형 인간이라는 단어는 처음엔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느끼게 했지만, 곧 그것이 내가 상처를 회피하는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면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싶었고, 친밀한 관계를 원했지만, 과거의 경험이 나를 조심스럽고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결국 스스로에게조차 감정을 감추게 만들었고, 그렇게 나는 관계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워졌다.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회피를 이해하고도 연결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여전히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에서 긴장한다. 내 감정을 말할 때면 여전히 목이 마르고, 상대의 반응에 불안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을 “이건 내가 나를 지키려는 방식이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반응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연습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피형 인간'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관계는 위험한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함께 만들어가는 안정감이 될 수 있다.”
그 안정감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감정 앞에서 서툴고, 누군가가 너무 가까워지면 긴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와 타인 사이에 새로운 길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관계는 선택 가능한 것’이라는 자유를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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